극단 입체 <인공신장실>, 바늘 빛, 이면의 욕망과 희망의 믿음에 대해
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
2025-09-09
-
2 회
-
0 건
본문
바늘 빛, 이면의 욕망과 희망의 믿음에 대해
제35회 거창국제연극제 공식초청작, 극단 입체 <인공신장실>
올해로 제35회를 맞은 ‘거창국제연극제’는 ‘인간, 자연 속에 연극적인 세상!’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거창 수승대 일원에서 펼쳐졌다. 국내외 7개국, 57개 극단이 참가했고, 76회의 공연을 선보인 이번 연극제는 ‘국제연극제’로서의 면목을 확인할 수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극제가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하나는 연일 이어진 폭염 속에서도 거창 수승대의 거북극장과 대나무극장 등 자연과 무대가 어우러진 야외 공간의 무대와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의 뜨거운 호응이었다. 한편, 이렇게 ‘거창국제연극제’가 자리잡을 수 있었던 중심에는 ‘극단 입체’가 있다는 것을 빠뜨려서는 안 될 것 같다. 1983년, 7월 19일 지역의 교사와 공무원, 예술인들이 모여 창단한 극단 입체는 거창 최초의 극단이라고 한다. 지난 40여년 간 300회 이상의 공연을 통해 꾸준히 무대에 올리면서도 ‘거창국제연극제’뿐 아니라 ‘거창실버연극제’, ‘거창겨울연극제’, ‘거창세계대학연극제’ 등과 같은 연극제를 주관하고 있는데, 이처럼‘극단 입체’가 지역 연극의 뿌리로 단단하게 자리 잡는 과정이나 연극제 등을 치러내면서 세계적 무대와의 교류, 진출 등의 성과는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극단 입체가 올해 거창국제연극제에서 선보인 공식참가작 <인공신장실>은‘투석실’을 극적 공간으로 삼고 있다. ‘신장 투석 환자’들을 통해 크게는 생명과 윤리에 대한 인간 본성의 접근과 함께 투석환자 입장에서의 생생한 취재와 이들의 사회적 소외라는 복합적 주제를 연극은 현장적 구체성이 잘 부각된다. 이 작품의 작가이자 연출인 ‘이종일’이 실제 투석환자로서 겪었던 병원 투석실의 경험을 통해 쓴 것이기에 다큐멘터리적 사실성과 픽션의 극적 서사가 자연스럽게 결합돼 관객은 드라마로서 재미와 작품의 문제의식에 큰 공감을 가질 수 있기도하다. 작품의 배경인 ‘인공신장실’은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이 일주일에 세 번, 적어도 네 시간씩 투석을 받아야 하는 고통과 소외의 공간이다. 곧 이들의 안타까운 삶에 대한 조명, 신체상 장애에 대한 절망과 심리적 문제, 그 갈등에 대해 우리는 비당사자로서의 ‘장애’에 대한 불편한 정서를 연극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극중 ‘신장이식’이라는 모두의 ‘꿈’을 두고, 여기에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투석환자들의 집착과 파괴적 욕망을 해부하고 있는데, 생명 연장을 위해인공기계에 매달려 있는 존재를 매우 사실감 있게 드러내면서 우리는 ‘인공신장실’이라는 극적 공간을 새롭게 확장해 볼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이 극적 공간은 단순한 병원 병실에 국한된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 군상의 축소판을 형상화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투석환자들과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주변인들은 이 연극에서 현대사회 구성원의 사회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신장이식’에 대한 폭력 분출 과정에서의 이상과 가치 대립(*이식의 타당성)까지 ‘주체성’에 관한 문제를 우리는 눈여겨 바라볼 필요가 있다. ‘투석’이라는 통제에 의해표준화되고 획일적인 개인이 ‘신장이식’ 가능성 앞에서 개별화된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 연극에서 가장 특별하게 바라봐질 수밖에 없다. 각각의 견해 진술은 ‘이식 가능성’에 대한 결정의 수용과 저항을 단적으로 대비하면서, 획일적 집단의 다른 주체적 인간의 욕망을 생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투석실에 모인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투석실의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퇴임 교사 허봉구, 퇴임 목사 서모세, 지적장애를 가진 주영심, 아들이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된 고령의 노덕순 여사, 요양보호사 박정옥, 그리고 빵장사와 포장마차를 병행하는 길명수까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투석실’의 환자, 보호자, 봉사자 등으로 묶여있다. 이들의 대화와 갈등, 그리고 투석이라는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도 각자가 타인의 삶에 대한 의지를 응원하며 따듯한 유머와 격려를 건네는 장면은 어쩌면 이 연극의 목적이 참다운 공동체의 발견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극은 관객에게 투석실의 현실을 감각적으로 전달해 내고 있지만, 이 가족 같은 공동체가 ‘신장이식’이라는 희망이 생기면서 그 이면의 욕망을 드러낸다는 데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신장협회에서 기증된 신장이 할당된다’는 희소식은 극적 전환점으로서 투석실의 평화롭던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식’을 통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 각 인물의 욕망과 입장이 표면화되는 장면은 이 연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조울증을 앓는 ‘서모세(오세철 연기)’는 ‘목회자’로서의 자신의 사명과 존재 이유를 내세우며 강하게 이식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결국 이식후보자로 유력했던 ‘노덕순(지미리 연기) ’여사는 ‘서모세’에게 이식을 양보하고 마는데, 뜻밖에 ‘길명수(박범찬 여기)’가 자신의 건강한 신장을 ‘서모세’에게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노덕순’은 신장이식을 받고 출소한 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서모세’는 건강 악화로 신장이식을 받지 못하게 죽게 되고, 명수의 신장은 지적 장애를 가진 ‘주영심(이미란 연기)’에게 이식된다. 이러한 극적 반전은 다소 봉합적이고 상투적인 구성이지만 관객에게는 누군가의 선택과 희생으로 한 생명과 삶이 바뀔 수 있다는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요양보호사 ‘박정옥(김계선 연기)’이 ‘허봉구(이승재 연기)’에게 자신의 신장을 나누겠다고 말하는 순간, 작품은 연대와 희생이 어떻게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극중 인물을 통해 반영된 작가적 메시지는 ‘노덕순’의 양보를 통해 인생 황혼기의 품위 있는 선택을, ‘허봉구’는 퇴임교사로서 교육의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서모세’는 목사로서의 사명과 조울증이라는 질병 사이에서 ‘시대정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주영심’은 지적장애를 가진 인물로, 사회적 약자이자 순수한 존재로 그려지며, 길명수는 투석실 밖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신장기증이라는 윤리적 선택을 실천하는 인물로서 특히 극중 그의 포장마차 장면은 신장 기증에 대한 사회적 위선과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다. 야외의 수승대 거북극장에서 상연된 <인공신장실>은 무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인공신장실’의 공간적 폐쇄성과 긴장감을 무리없이 구현해냈다. 침대, 투석기, 창밖의 계절 풍경 등 최소한의 배경 장치로 공간의 인물의 심리 감정을 무리없이 전달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